쨍한 추위에 입김을 몰고 들어선 선술집. 자작한 나베가 끓는 사이 몸을 덥힐 뜨끈한 사케 한 잔이 등장합니다. 부드러우면서도 깨끗하고, 쌀 본연의 감칠맛이 살아있는 혼죠조 한 잔이 선사하는 기분 좋은 노곤함… 신지은 캡틴은 요리와 사케의 합을 그려내는 사케소믈리에입니다. 최고의 궁합을 위해 날선 미각을 깨우는 그녀는 오늘도 사케 한 잔에 행복을 맛봅니다.

“사실 저는 소맥파에요.”
예상 밖의 화끈한 고백 뒤에 곧바로 ‘그런데’가 따릅니다. 사케의 텁텁한 향과 맛을 즐기지 않던 신지은 캡틴의 운명을 바꾼 일생일대의 사케 한 잔은 비오는 동강에서 시작되었죠.

“2006년, 워커힐 일식당 식구들과 래프팅을 갔어요. 비를 흠뻑 맞고 난 후 스키야키를 끓이는데 선배가 ‘핫카이산 준마이 긴죠’를 꺼냈죠. 한 모금 마시고 눈이 번쩍 뜨였어요. 사케가 이런 맛이었나, 깔끔하고 부드럽고 풍부한 과일향까지… 그때부터 선배를 졸라 사케를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순수한 쌀과 누룩으로만 만든 사케는 편견과 달리 깔끔한 맛이 특징이예요. 이제 신지은 캡틴은 ‘꾸밈없이 순수하고 맑은 매력을 가진 술’이라 자신있게 소개합니다. 와인보다는 가볍게, 소주보다는 약하게, 맥주보다는 깔끔하게 즐길 수 있는 사케 한 잔. 신지은 캡틴은 그날 이후 연애를 하듯 설레고 행복하게 사케의 매력을 하나씩 알아갔습니다.

국내 최초 여성 ‘사카쇼’, 절대미각으로 승부

“제가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거든요. ‘SSI(Sake Service Institute. 일본 사케서비스협회)’의 사케소믈리에 인증자격인 ‘기키자케시’ 자격증을 따고나니 가장 상위 단계인 ‘사카쇼’에 욕심이 생겼어요. 사케 프로테이스터를 가려내는 최고 마스터 자격증이죠.”

실기시험 당일 맛보는 술만 무려 200여 종. 향과 맛을 그래프 형식으로 그려내는 블라인드 테스트는 물론 여러 술 중 산화된 술을 가려내는 능력까지 예민하게 발휘해야 합니다.

“절대미각은 필수입니다. 입은 물로 계속 헹구지만 후각이 무뎌질 때가 있거든요. 이때는 팔에 코를 대고 살 냄새를 맡는 게 요령이예요. 연습할 때도 마시지 않고 맛만 느껴야 취하지 않고 여러 종을 음미할 수 있습니다.”

신지은 캡틴은 국내에서 4번째, 전 세계 321번째 사카쇼에 등극했습니다.

20여 가지 사케를 갖춘 워커힐호텔 일식당 모에기(MOEGI). 신지은 캡틴은 오늘도 사케를 음미합니다. 오늘의 요리와 어울리는 사케는 무엇인지, 한번 오픈한 사케의 맛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세심하게 감지하는 것이죠. 사카쇼 자격을 갖춘 덕에 모에기를 찾는 손님에게 와인이 아닌 사케를 권할 기회도 많아졌습니다.

“늘 와인만 드시던 손님이 계셨어요. 사케는 냄새가 난다며 단칼에 거절하셨죠. 그날도 꽤 고가의 와인을 드시고 계셨는데 제가 맛봐도 되겠느냐고 조심스레 청했어요. 그리고 그 와인과 맛이 흡사한 사케를 권했더니 깜짝 놀라신 거예요. 맛이 깔끔하고 회랑 잘 어울린다며 말이죠. 그 뒤로 사케만 찾으십니다. 일본에 출장가시면 사케 사진을 찍어 문의할 정도로 가까워졌고요.”

신지은 캡틴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번집니다. ‘사카쇼’에 오르기까지는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이었지만 그 자리에서 얻은 지식과 소양은 더 많은 이들과 나누는 게 사케소믈리에로서의 진짜 행복이기 때문이죠.

사케와 요리의 합, 제가 이어드려요.

사케는 음식과의 궁합 역시 중요합니다. 딱 맞는 음식을 만나야 사케의 맛이 깊어지고, 사케 한 잔에 음식의 맛도 더 진해지니까요. 신지은 캡틴은 식중주로 매력적인 사케를 좀더 친근하게 전달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일본에는 2,000여 개의 사케 양조장이 있어요. 쌀과 물에 따라, 쌀도 얼마나 정미했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다 다르죠. 사케의 다양한 풍미를 선보이기 위해 홋카이도, 도쿄, 시코쿠 지방을 대표하는 사케 세트를 준비 중이에요.” 모에기에서 2월부터 일본 지방의 특색이 잘 드러나는 사케 3개를 도쿠리 세트로 선보일 예정이라고 합니다.

현재 모에기에서는 겨울철 진미인 복요리 프로모션이 진행 중인데요. 화룡점정은 신지은 캡틴의 불쇼와 함께 등장하는 ‘히레사케’랍니다. 뜨끈하게 데운 사케에 잘 말린 복어 지느러미를 담갔다 꺼내 성냥불을 살짝 붙여주면 더욱 진하고 깊은 사케 맛을 즐길 수 있지요.

“사케의 다양한 맛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모르는 분들이 많으세요. 그래서 제가 할 일이 많지요. 더 많은 분들이 사케를 즐겁고 맛있게 즐길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게 목표에요. 후배 양성을 위한 공부도 계속할 예정이고요.”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상대가 있다는 것, 이만큼 행복한 만남이 또 있을까요? 신지은 캡틴은 인생 최고의 인연인 사케 한잔의 매력에 행복하게 취해봅니다.

복어가 가장 맛있는 계절, 겨울에 마시기 좋은 ‘사케 한 잔’과 함께 하세요.

복 튀김 X 스이게이 도쿠베츠준마이

복 튀김 X 스이게이 도쿠베츠준마이 (*다이긴죠/도수 15%)

절제된 향과 부담없는 산미가 특징입니다. 모든 요리의 맛을 이끌어낼 수 있어서 맛이 강한 요리나, 튀김과도 매우 잘 어울립니다. 차갑게 먹어도 좋고 따뜻하게 먹어도 좋을만큼 폭넓은 온도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

복 사시미 X 카메이즈미 혼죠조

복 사시미 X 카메이즈미 혼죠조 (*긴죠/도수 15.3%)

코우치현의 쌀 ‘마츠야마미이’와 ‘cel-19’라는 유니크한 효모를 원료로 빚어 낸 사케입니다. 쌀 본연의 감칠맛이 입안을 부드럽게 감싸주기 때문에 사시미와 차갑게 마시는 것을 추천해요.

복 냄비 X 겐센 카라구치 요시노가와

복 냄비 X 겐센 카라구치 요시노가와 (*혼죠/도수 15%)

400년 이상의 긴 역사를 자랑하는 요시노가와의 간판 사케입니다. 깔끔하면서 드라이한 풍미로 쉽게 질리지 않아요. 복냄비는 맑은 국물에 계절 채소와 복어 살을 데쳐먹는 일품요리입니다. 맛과 영양이 절정에 이른 복요리와 사케를 곁들여 보세요.

사케 리스트, 어떻게 읽죠?

‘사케’는 쌀로 빚어 가장 맑은 상태로 걸러낸 술을 말합니다. 쌀을 깍고 남은 비율, 즉 ‘정미율’에 따라 등급이 결정되는 사케는 크게 다이긴죠·긴죠·혼죠조로 구분합니다. 쌀 가운데 전분이 사케의 향을 좌우하기 때문에 쌀을 많이 깍은 술을 고가의 등급으로 여기는데요. 50%이하인 다이긴죠가 최고급 사케인 셈이죠. 60%이하는 긴죠, 70%이하는 혼죠입니다. 이 등급이 해당하지 않은 술을 보통주라고 합니다. 정미율 퍼센트가 낮을수록 풍미가 화려하고 단맛이 풍부합니다.
‘OO 준마이 다이긴죠’, ‘OO 준마이 혼죠조’
맨 앞 단어 OO은 브랜드명, 지역명입니다. ‘준마이’는 순수한 쌀이라는 뜻으로 오로지 쌀과 누룩, 물로 만든 술에만 쓸 수 있는 명칭이에요. ‘준마이’가 붙지 않으면 양조 알코올이 함유된 술이라는 뜻입니다.